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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緣 Ties

에스프레소 컵

by 여우ㅤㅤ 2023. 11. 12.

이 에스프레소 컵에 담긴 작은 세계는 마치 작은 시간 여행과 같습니다. 아침마다 이 단단한 도자기 속에선 아로마로 가득 찬 커피의 향기가 맴돕니다. 이 컵에는 이젠 제법 긴 시간이 흘러서 그 속에는 무수히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과거 미국의 Keystone State, 펜실베니아에서 일 년을 지냈습니다. 나무숲 잔디 언덕에 있던 작은 집에 살아보며, 남겨두고 싶던 인연에 대해 고민해보며 삶의 전환점을 맞았던 경험이 있습니다. 이 작은 컵에는 당시 보고 듣고 겪으며 다녀갔던 곳들이 세겨져 있습니다. 

펜실베이니아 사투리 Yinz, 경칩에 해당하는 Punxsutawney Groundhog Day, 필라델피아 치즈스테이크, 초콜릿마을 허쉬, 서스퀘한나 강, 라티폴리아 꽃, 애팔래치아 산맥, 흰 꼬리사슴, 턴파이크 도로, 필라델피아 자유의 종, 해리스버그의 락빌다리, 펜실베이니아 주깃발. 손으로 감촉을 느껴보면, 그 순간들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당시부터 이 잔은 아침마다 만나던 첫 친구로 근사한 하루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펜실베이니아의 이슬을 품은 풀향기와 아침의 한기가 몸에 스며들면, 중력으로부터 몸의 무게를 거스르며 일어서게 됩니다. 에스프레소는 졸리던 한 모금에 생기 넘치던 아침을 선사했고, 바쁜 날의 산만함은 경박단소함으로 바꾸어 줬습니다. 언제나 이 작은 컵에서 하루의 서사가 시작될 수 있었습니다.

오늘도 한잔으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목적지를 살펴 이어갈 일들을 챙겨봅니다. 빳빳한 조간신문이 전해주는 소식과 새벽 TV의 기상캐스터가 아침의 적막함을 채워줍니다. 이내 밥 짓는 증기 소리가 들려오면 마침내 플랫폼을 떠나는 육중한 기관차 마냥 나의 하루는 속도를 내며 나아갑니다. 

매일 아침 새롭게 피어오르는 활기를 전해주던 에스프레소 잔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날마다 나에게 주어진 다정하고 화려한 하루를 낭비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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