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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韻文 Verse

송찬호 "찔레꽃", 한국 (2006) c̅ 클로버 747TF

by 여우ㅤㅤ 2023. 11. 4.

2021년 1월 10일 일요일 오전 7시 36분 맑은 날씨 영하 17도.
며칠 동안의 출장으로 새벽에 시를 노래하지 못했습니다. 일상이 갑작스럽고 빠릅니다. 바쁜 일 때문인지, 도시의 속도가 낯설기 때문인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어쨌든 속리산과 구병산 줄기가 만나는 보은군 마로면에는 시인이 한명 살고 있는데, 이 송찬호 시인은 평생을 충북 보은에서 살고 있는 농민 시인입니다.

찔레꽃, 송찬호*作

그해 봄 결혼식날 아침 네가 집을 떠나면서 나보고 찔레나무숲에 가보라 하였다.

나는 거울 앞에 앉아 한쪽 눈썹을 밀면서 그 눈썹 자리에 초승달이 돋을 때쯤이면
너를 잊을 수 있겠다 장담하였던 것인데,

읍내 예식장이 떠들썩했겠다 신부도 기쁜 눈물 흘렸겠다 나는 기어이
찔레나무숲으로 달려가 덤불 아래 엎어놓은 하얀 사기 사발 속 너의 편지를 읽긴
읽었던 것인데 차마 다 읽지는 못하였다.

세월은 흘렀다 타관을 떠돌기 어언 이십 수년 삶이 그렇데 징소리 한 번에 화들짝
놀라 엉겁결에 무대에 뛰어오르는 거 어쩌다 고향 뒷산 그 옛 찔레나무 앞에 섰을 때
덤불 아래 그 흰 빛 사기 희미한데,

예나 지금이나 찔레꽃은 하얬어라, 벙어리처럼 하얬어라, 눈썹도 없는 것이 꼭
눈썹도 없는 것이 찔레나무 덤불 아래서 오월의 뱀이 울고 있다.


*송찬호(宋燦鎬 1959-)는 대한민국의 시인으로 1959년 충북 보은에서 태어나 경북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1987년 '우리시대의 문학'에 '금호강'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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