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살아가는데 다양한 기술에 의존하며 살고 있습니다만, 자기 표현과 생산성을 발휘하는데 가장 고전적인 도구는 활자를 표현하는 자판일 것입니다. 손편지의 따뜻한 촉각, 타자기의 소리, 오래 읽어 닳아버린 책 페이지의 감성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키보드'는 없어서는 안될 독특하고 친밀한 동반자입니다. 저는 오직 60개의 키를 갖춘 자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오랜 고민이 녹아든 해피해킹이라는 키보드입니다.
초창기 PC는 브랜드마다 키보드의 자판 배열이 서로 맞지 아니하였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1992년 와다 에이이치 和田 栄一 교수는 PFU Technical Review지에 '키보드 배열에도 많은 관심을'이라는 글을 기고하며, 이렇게 생경한 자판으로 프로그래밍을 하자면 익숙해지는데 문턱을 느끼는 유저가 많음을 알렸습니다. 이를 위해 1996년 와다 에이치 교수는 스스로 60개의 자판 배열을 고안하여, 후지츠로 하여금 KB01을 시판한 이래, 2003년부터 해피해킹이 현재 모습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보급되었습니다.
비록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있지만, 그간 오간 이메일들, 보고서, 논문들, 기타 여러 이야기들은 손가락이 지휘하던 교향곡이 되었습니다. 긴 시간 생각을 흡수해 창의력을 전달하며 스크린에 활자로 연주해냈던 것입니다. 해피해킹을 처음 알게 된 것은 2005년이었습니다. 평소 관심있던 입력UX에 여러 키보드를 살펴보다 활자 각인이 없는 해피해킹 흑색 무각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소장하였던 바 있습니다. 무각은 아름다웠지만 눈먼 기분으로 자판을 헤아려야 했기에 처분하였습니다. 이후 등장한 블루투스 3.0 무선 버전(2016년 4월)은 매력적이었지만, 짧은 배터리 수명으로 매력이 떨어졌습니다. 이후, 완결판을 기다리던 차에 새로운 소식이 들려옵니다. 2019년 12월 10일, 그간의 모든 단점을 일소해버린 해피해킹, Professional Hybrid Type-S가 등장한 것입니다.
위는 전체적인 키보드의 모습입니다. 상단에 두개의 AA배터리를 위한 부분이 돌출되어 있습니다. 가장 무난한 사무형 아이보리색 버전이며, 한글 각인이 없어 측면에 연필로 새겨 넣었습니다. 전용 키캡으로 푸른색 ESC와 붉은색 Control 키를 배치하면 위와 같은 모습이 됩니다. A4 용지 절반 크기로 평소 좋아하는 만년필처럼 간편히 휴대하며 어느 곳에서나 사용할 수 있는 작은 키보드라는 장점이 있습니다.
바닥까지 누르지 않고도 입력이 가능한 정전용량 비접촉 방식입니다. 이 두가지 특징을 조합하면 서걱거리는 촉각으로 시작해 쵸컬릿을 부러뜨리는 말단 감각으로 매우 빠른 구름타법을 칠 수 있습니다. 키 터치는 여타 기계식 키보드가 구둣발로 시장바닥을 때리는 듯한 요란함을 보이는 것과 큰 차이가 있습니다.
고속입력을 장시간 편안하게 할 수 있다는 제조사의 설명처럼, 키보드의 기본기에 충실합니다. 키보드 상단에는 HHKB Professional HYBRID가 명기되어 있습니다. HYBRID는 유선과 무선을 병용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붉은색과 청색의 포인트가 되는 추가 키캡의 모습이 재밌습니다.
오른쪽 상단에는 블루투스 인가 및 전원 정보를 전달하는 led 표시 홀이 있습니다. 조용한 스크로크, 즉 silent stroke를 의미하는 type-S라는 꼬리표가 상단에 표기되어 있습니다.
미니멀 사이즈 덕분에 레스팅 포지션에서 손을 크게 움직일 필요가 없고, 빠른 타이핑이 가능합니다.
합리적인 키 배열에 더해 키맵 변경이 가능해 졌습니다. 매핑된 내용은 키보드에 저장됩니다.
해피해킹은 프로그래머에게 이상적인 핵심 레이아웃을 갖춘 키보드라는 명성을 갖고 있습니다. 더불어 PFU 社의 '정전용량 무접점'이라는 상징적인 기술이 자주 언급되는 편입니다. 필자가 느낀, 이 키보드의 장점은 다음 다섯 가지 입니다.
- 키맵핑을 할 수 있다. (happyhackingkb.com/download)
- 블루투스 멀티패어링이 빠르게 연결된다.
- AA배터리 교체로 3개월 이상 사용한다.
- USB Type-C 커넥터를 사용한다.
- 인생을 함께 할 키보드라 당당히 부를 수 있는 제품입니다.
이 작은 플라스틱 활판은 단순한 키보드의 효용을 넘어, 열망을 쫓던 작업과 마감일에 맞춰 촉박했던 업무에 넘쳐나는 글과 문자를 받아적었습니다. 이제는 단순한 도구를 넘어서 셀수없이 많은 단어들을 상징하는 화폭이되었습니다. 시대를 초월해 대체할 수 없는 동반자로 남아준 해피해킹을 돌아보며 앞으로의 창조적인 여정에 더 많은 협업을 기대하면서,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참고
- Eiiti Wada. Please Pay Your Attention to the Keyboard Layout. PFU Technical Review https://happyhackingkb.com/jp/special/dr_wada/pfutechreview/ Vol.3, No.1 pp.1－15 (1992)
- 키보드사냥꾼. 해피해킹 키보드의 역사. flayus https://www.flayus.com/it/4773412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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