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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緣 Ties

秋夕茶禮

by 여우ㅤㅤ 2023. 10. 6.

명절에는 의례 가족이 제단을 놓고 향을 피워 고인에게 음식과 음료를 올리는 제례를 치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불평등하고 근본없는 것으로 치부되며 제사가 사라지고 있네요. 우리 사회에 제사가 사라지는 것은 마냥 좋은 일일까요? 추석을 맞아 제사의 의미를 정리해 봅니다.

제사는 기억입니다. 근래 돌아가신 가족에게 갖고 있는 존경심 뿐 아니라 그들의 영혼을 마음 속에 계속 살려두고자 하는 열망입니다. 고인을 기려 가족에 대한 공헌을 인정하고, 이를 복기하자면 가족 구성원들은 연속성과 소속감을 느끼고 내가 자신의 일생을 뛰어 넘는 서사의 일부임을 알게 됩니다.

제사는 정체성입니다.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지던 가치관이 계승됩니다. 제사를 통한 회합은 친척 간에도 유대감을 형성하여, 관계를 강화하고 공동의 이상을 고취시킬 수 있습니다. 다음 세대들에게 스토리텔링의 기회를 부여해 돌아가신 분들이 직면했던 도전들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게 됩니다. 이로서 과거 세대의 영감을 보존하고 기념할 수 있도록 해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 지속가능한 정체성을 제공합니다. 제사는 내가 자란 가족의 영웅을 기억하는 일로 발전해 긍지를 회복하는 원천이 되기도 합니다.

제사는 불멸의 문화입니다. 사람들은 긍정적으로 기억되기 위해 노력합니다. 더 나아가 후세에 이롭게 기록되는 일을 명예롭게 여기게 됩니다. 후대를 기르고 그 후손이 제사를 지내는 문화권에 살았다면, 열심히 살아왔던 대가로 유산과 기억을 남길 수 있습니다. 사람이 죽음을 잊기 위해 기억에 남을 만한 존재가 되고 싶어한다는 점에서, 제사는 기억 속에 불멸을 보장하기 위한 문화적 장치라 할 수 있습니다. 죽고 싶지 않지만 영혼 불멸을 믿지 않는 우리에게는, 내 사진이 후손에게 남고 내 유산이 후손들에게 전달되는 감각을 돕는 의식이 필요합니다. 이를 통해 소외됨과 잊혀짐, 죽음에 대한 위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제사는 자신이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확인받는 행위가 됩니다.

제사가 사라진다는 말은 불멸을 약속하던 사회적 장치 하나가 사라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더구나 대한민국은 세속적인 곳으로 무신론적인 사회분위기가 있습니다. 이제는 자신을 좋은 부모로 기억해줄 자녀를 부담스러워하는 경향마저 있습니다. 사회적 존재일 수 밖에 없는 인간이 과도한 경쟁과 격차 탓에 사회로부터 퇴출되는 사람이 많고, 응원해 줄 사람이 없으며, 인정받을 수단이 마땅하지 않다면, 자신이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수단은 이제 무엇이 남아 있을까요.

최근 자존감 높이기 열풍은 '소외'라는 두려움에 그 뿌리가 있습니다. 제사가 주는 효용은 여기 머문 현대인의 정서에 득이 됩니다. 제사는 수 천년간 인류 문화의 한 부분이었고 이러한 의식은 살아있는 사람과 고인 간의 다리 역할을 해 과거, 현재, 미래의 상호 연관성에 대한 독특한 의미를 제공합니다. 꼭 홍동백서가 아니라도, 그 의미를 기억하는 고유의 삶의 방식을 갖고 있는 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 간에 차이를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필멸의 존재가 불멸의 기억으로 위로받는 일은 제사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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