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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纪录片 Documentary

1945년 한민족 근대에서 현대로의 이행, Harold Agnew & George F. Kosco (1945)

by 여우ㅤㅤ 2023. 11. 13.

1945년은 우리 역사를 근대와 현대로 나누는 기준입니다. 해당년도에 가장 강력했던 사건은 원폭입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되어 1945년 9월 2일 전함 USS 미주리 선상에서 일본이 항복 문서에 서명하면서 제2차 세계 대전은 종전합니다.

종전의 분위기는 무르익고 있었습니다. 독일은 이미 1945년 5월 7일 랭스에서 서방 연합군에게 항복하였고, 5월 9일 베를린에서는 소련군에게 항복하였습니다. 와중에 미국은 1945년 7월 16일 트리니티 실험을 통해 비밀리에 원자폭탄을 완성하였습니다. 동시에 미국, 영국, 소련의 지도자들은 전후 정리를 위해 1945년 7월 17일부터 8월 2일까지 독일 포츠담에 있는 빌헬름 폰 프로이센 황태자의 집, 체칠리엔호프 궁에서 회담을 개최합니다. 루즈벨트(Franklin D. Roosevelt, 1945년 4월 12일 사망) 대통령을 승계한 미국의 해리 트루먼 (Harry Truman) 대통령과 영국의 처칠(Winston Churchill) 수상이 일본에 최후통첩을 하는 포츠담 선언문을 제안하였고, 비록 불참하였지만 중화민국의 장제스(Chiang Kai-Shek) 국민정부 총통이 전신을 통해 선언에 참가하게 이르렀습니다. 선언문의 요지는 "일본이 항복하지 않는다면 즉각적이고 완전한 파멸"에 직면하게 될 것을 경고한 것이며, 그 내용은 아래 13개 항목으로 되어 있습니다.

제1~5항 : 서문,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이 죄를 뉘우치고 이 선언을 즉각 수락할 것을 요구.
제6항 : 군국주의 배제.
제7항 : 일본 영토의 보장 점령.
제8항 : 카이로 선언(1943년 11월 27일; 미국, 영국, 중국 3국이 도달한 외교적 타협의 산물로 향후 한국을 자유독립국가로 승인 결의)의 실행과 일본 영토의 한정.
제9항 : 일본군대의 무장해제.
제10항 : 전쟁 범죄자의 처벌, 민주주의의 부활 강화, 언론, 종교, 사상의 자유 및 기본적 인권 존중의 확립.
제11항 : 군수산업의 금지와 평화산업 유지의 허가.
제12항 : 민주주의 정부수립과 동시에 점령군의 철수.
제13항 : 일본 군대의 포츠담 선언 수락 및 해체.

최후통첩에 응하지 않았던 일본에게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 1945년 8월 9일 나가사키, 두 번의 원자폭탄이 투하됩니다. 두 폭탄은 막대 모양의 'Little boy(꼬맹이; 루즈벨트의 별명)'와 공 모양의 'fat man(뚱뚱이; 처칠의 별명)'입니다. 원폭 직후 1945년 8월 8일, 소련 공산당 서기장 스탈린(Joseph Stalin)도 대일전 참전을 결심하며 스웨덴을 통해 일본에 항복 요구를 타전하며, 8월 10일 日관동군을 공격합니다. 결국, 일본은 1945년 8월 14일에 연합국에 항복을 통보하고 하루 지난 8월 15일에 쇼와덴노(昭和天皇) 히로히토(迪宮裕仁)가 연합국이 내민 포츠담 선언의 수용을 발표합니다.

이로써 제2차 세계 대전은 종결되고 연합군의 일본 본토 진주로 연합군 최고 사령부(The Supreme Commander for the Allied Powers; SCAP 또는 General Headquarters, GHQ)의 관리체제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로서 당시 군부독재 하에 있던 자칭 '대일본제국'은 식민지와 점령지가 해체되고 이후 일본국 헌법을 기초으로 하는 일본국으로 전환됩니다. 공식적인 항복 조인식은 1945년 9월 2일 도쿄 만에 정박한 아이오와급 전함 USS 미주리 호의 선상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이날 항복 조인식에 참석한 각국 대표의 명단은 다음과 같습니다.

- 일본 대표 : 시게미츠 마모루(重光 葵, Mamoru Shigemitsu) 외무대신, 우메즈 요시지로(梅津 美治郎, Yoshijirō Umezu) 육군참모총장
- 연합군 최고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
- 미국 대표 체스터 니미츠(Chester W. Nimitz) 미 해군 태평양함대 사령관
- 중화민국 대표 쉬융창 (徐永昌, Xu Yongchang) 중화민국 군사위원회 군령부장
- 소련 대표 쿠즈마 데레뱐코(Кузьма́ Никола́евич Деревя́нко) 육군 중장
- 영국 대표 브루스 프레이저(Bruce Fraser) 제독/영국 태평양함대 사령관
- 호주 대표 토마스 블레이미(Thomas Blamey)
- 뉴질랜드 대표 레너드 이시트(Leonard M. Isitt)
- 네덜란드 대표 C.E.L. 헬프리흐(Conrad Emil Lambert Helfrich)
- 프랑스 대표 필리프 르클레르(Philippe François Marie Leclerc de Hauteclocque)
- 캐나다 대표 로렌스 무어 코즈그레이브(Lawrence Moore Cosgrave)

Allied battleships in Sagami Bay, August 28, 1945.
USS Missouri (BB-63) flyover, Tokyo Bay, 2 September 1945. Huge formation of American planes over USS Missouri and Tokyo Bay celebrating the signing, September 2, 1945.
The Japanese surrender on board the U.S.S. Missouri in Tokyo Bay on September 2, 1945 (photographer Mydans, Carl)

1945년 9월 2일 일요일 이른 아침에 9개국 연합국 대표들과 일본은 항복 조인식에 앞서 일본의 도쿄만 요코하마에 정박 중이던 45,000톤 급 미국 전함 USS 미주리(BB-63)호에 승선하였습니다. 일본 대표 시게미쓰 마모루 외무대신이 정식으로 나와서 항복 문서에 서명을 하였습니다. 마이든스 Mydans는 항복 문서에 조인하는 일본 육군 총참모총장 우메즈 요시지로(梅津 美治郎) 대장을 포착하였습니다. 테이블 건너편을 보면 리차드 케이 서덜랜드 중장과 더글러스 맥아더 Douglas MacArthur 장군이 있습니다. 연합국의 대표들은 맥아더 장군 뒤에 서있습니다.

Representatives of the Empire of Japan stand aboard USS Missouri prior to signing of the Instrument of Surrender.
Japanese Foreign Minister Mamoru Shigemitsu signs the Instrument of Surrender on behalf of the Japanese Government, on board USS Missouri (BB-63), 2 September 1945.
General of the Army Douglas MacArthur signing the Instrument of Surrender on behalf of the Allied Powers.
Lieutenant General Richard K. Sutherland, aboard USS Missouri, corrects a signatory error in the Japanese Instrument of Surrender. US Colonel Sidney Mashbir and Japanese Foreign Minister Katsuo Okazaki look on.
MacArthur at surrender ceremony. The flag flown by Perry is visible in the background. Commodore Perry's flag was flown from Annapolis, Maryland to Tokyo for display at the surrender ceremonies which officially ended World War II.
Japanese envoys leave the USS Missouri (BB-63) in Tokyo Bay, Japan, after signing surrender papers.
Japanese delegation leaving USS Missouri, 2 September 1945.
Surrender Plaque USS Missouri (BB-63).

 

*참고

  1. 강석기. 17. 해럴드 애그뉴 (1921. 3.28 ~ 2013. 9.29) 원폭 투하 장면을 직접 본 핵물리학자. 과학은 길고 인생은 짧다 (3). 동아사이언스 https://www.dongascience.com/news.php?idx=3357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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