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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韻文 Verse

정지용 "향수", 한국 (1927) c̅ 마라톤 1000DLX

by 여우ㅤㅤ 2023. 11. 4.

2020년 12월 15일 맑음
오늘 타자기를 하나 더 들여올까 생각 중입니다.  
네벌식 타자기는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향수, 정지용*作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傳說)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정지용(鄭芝溶, 1902년 6월 20일 ~ 1950년)은 대한민국의 시인으로,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 납북되었습니다. 
이 시는 1927년 3월 조선지광 제65호에 실렸으며, 작가 정지용(1935)의 첫 시집에 수록된 작품으로, 주권과 국토는 물론 우리말마저 얽힌 아픈 상황에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고향을 잃은 슬픔을 표현한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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