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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韻文 Verse

백석 "남시의주 유동 박시봉방", 한국 (1948) c̅ 스미스-코로나 클래식

by 여우ㅤㅤ 2023. 11. 4.

2020년 12월 5일 토요일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은 어떤 시를 쳐야 할지 설렘이 있습니다. 한글 4글자 세트 키 레이아웃이 꽤 익숙해졌지만 오타는 피할 수 없습니다. 오타를 보면 매우 괴롭습니다. :)
오늘은 우리나라 시인들이 낭송하는 가장 유명한 시를 골랐습니다. 절망을 승화시켜 자기 연민에서 자기 소유로의 의식의 흐름을 다룬 시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 시 제목은 편지에 적힌 발신인의 주소를 가리키는 것으로 남신주 유동(신의주 남쪽)에 있는 박시봉의 집에서라는 뜻입니다.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백석*作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木手)네 집 헌 삿을 깐,
한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 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 밖에 나가디두 않구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 벼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턴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 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백석(1912~1996)은 한국의 시인으로 본격적으로 시를 창작한 기간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1935년 데뷔 후 1948년부터 약 13년간 100여 편의 작품을 발표했습니다. 이 시를 지은 백석은 8·15 광복 후 스승 조만식의 부름을 받고 평양에 머물며 비서 겸 러시아어 통역으로 조만식을 도왔습니다. 과거에는 월북 작가라는 인식이 강해 작품 언급을 회피하던 시인이었지만, 공식적으로 작품 금지가 해제된 후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민족의 삶을 모국어로 노래한 뛰어난 시인으로 지금도 많은 시인들이 동경하는 최고의 현대시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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